김현석 KIM, Hyun Suk
2021.03.02-03.31
'을 갤러리'의 대-전시실에 들어서면 천장 전체에서 내려오는 밝고 환한 LED 조명과 흰색 벽면에 단아하고 잘 정리된 흑백의 단색 조 작품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김현석 작가의 작업은 주로 나무 판에 하얀 캔버스 천을 씌우거나, 나무판재에 흰색 아크릴로 채색한 바탕 위에 철사로 작업을 한다. 이 철사들은 캔버스나 판재의 뒷면에서 앞으로 나와 다시 뒤로 들어가거나, 혹은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작업을 구성하는 소재인 철사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소재는 바로 그림자이다. 작가는 작업 주제이자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로 철사의 그림자를 배경으로 그려 넣었다. 작업들은 평면이 아닌 부조이며, 앞에 설치되어있는 철사와 뒤에 보이는 그림자 사이에는 공기가 흐르는 3차원의 입체적 형태를 띠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조형적 요소 중에 중요한 일부분이다. 관찰자들로 하여금 그냥 간과하기 쉬운 이 공간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명확히 숨겨져 있다.
작업에 사용된 철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공사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철근과 철근을 엮는 결속사이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삼끈이나 알루미늄의 재료도 사용하였다. 이 재료들은 화면 위해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주제와 부합하고 또 다루기 쉬운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 정해진 캔버스를 미리 만들어 놓고 하는 것보다 그저 무작위로 주어진 캔버스나 재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처음 하나의 선을 그은 후, 그 뒤 하나씩 화면의 구성을 위해 점점 더해지는 재료로 조형을 만들어 가는데, 이 작업들은 다분히 계획적이고 주도 면밀하게 일어난다. 마치 동양화에서 난을 칠 때 첫 획에 의해 다음의 획이 정해지듯 상호간의 관계에 의해 화면의 전체적인 구성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조명과 그림자의 관계에서도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다. 이것은 실제 조명이나 빛의 그림자와는 다른 임의에 의한 표현인데, 일반적으로 관람자들이 작업의 그림자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의한 판단을 가지고 보는것에 대한 일종의 경고도 포함한다. 동시에 작업의 주-주체인 철사와 배경으로 보이는 비-주체인 그림자와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그는 다분히 의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작업 중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작가가 어릴 적 앞마당에 드리워진 꽃나무의 그림자 안에서 조용히 놀던 때의 기억이다. 멀리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그림자 안에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작가의 기억은 그의 무의식 세계에 존재하고있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지금도 그의 작업에 반영되고 있다. 예술가로서 대상에 대한 관찰은 예술가 자신의 삶에서 보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사물에 대한 자세하고도 주도면밀한 관찰은 곧 예술가에겐 그가 예술가이기를 존재케 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예술가에겐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작가 김현석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세계를 오가며 예술가로서의 감각을 다듬어가고 있다. 작업에 나타나는 그만의 정교하면서도 세심한 통찰력은 그가 가지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에 대하여 간섭하는 세계의 모든 관계들을 따지고 아우르는 작업을 시도한다"라는 작가의 표현은, 작업에서의 주체인 철사와 비-주체인
그림자는 곧 둘이 아닌 하나다 라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다. 이 말은 인류의 역사에서 주체와 비-주체는 늘 함께 동시에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늘 상호작용을 통하여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고 받아 들이면 될 듯하다.
이번 '을 갤러리' 실제 조명에 의한 그림자는 눈으로 확인이 어렵다. 전시장 조명은 의도적으로 작품이 가지는 본래의 그림자가 잘 드러나지 않게 설정하였다. 조명에서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 전시회에서는 작가의 이런 의도적 그림자는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현실이 실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념에 익숙함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라는 작가의 노트는 우리의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보편적 관념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김현석 작가의 작업은 흔히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념에서 탈피하라는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는 이러한 우리의 인식과 관념에 대한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시각은 사물을 판단하는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닌, 사고와 인식에 대한 의식의 반증에 대한 것이다. 김현석 작가의 작업은 주어진 혹은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지 못하는 우리의 관념적 모습에 대한 은유적 비판일 것이다.
작가 김현석의 작업은 한마디로 단색조의 작업이다. 흑백 중에 검정은 감정을 숨기는데 이용하기도 하는데,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작업에 숨김으로써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의 언어를 더 높이고 있다. 화려함의 컬러는 자기 내면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혹은 이성적인 면보다 감서에 치우쳐 자칫 작업에 표현하려는 작가의 소리를 잘 읽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의미로서 작가의 작업은 다분히 호소하고 자신이 내려고 하는 소리를 잘 전달하고 있다고 본다.
박은수 [독일 디플롬 디자이너, 철학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