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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흠 CHOI Sang-Hm

2019. 11. 19 - 12. 21

최상흠의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류병학 (미술평론가)

 

  “한 사회란 그 집단의,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 도덕적, 종교적 가치의 총체적 반영이며 이러한 부분을 토대로 만들어진 세계관은 가공의 건축물과 같고, 그 사회의 의미구조로 읽어야만 바로 보이는데, 이런 일련의 작업은 세계를 생각의 틀로 구축하는 것이며 존재의 차원을 의미차원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삶이나 행위도 가설 건축물처럼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결정적이거나 절대적 진리와 상관이 없다.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세계와 시간 속에서, 또한 변화하는 사고를 가진 개체인 나는 내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와 사물을 미결정 지속의 어떤 관점 ‘이렇게 본다’ 정도의 말로 표현한다.”

-최상흠의 ‘작가노트’(2017) 중에서

 

대구 남구 이천동 고미술 거리에 위치한 을 갤러리(EUL gallery)는 독특한 전시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작년 초 개관한 을 갤러리의 개관전을 방문했었다. 당시 필자는 을 갤러리의 전시공간들을 보고 홀딱 반했다. 필자가 을 갤러리 건축에 반한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옛것과 새것이 동거하는 건물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적의 전시공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을 갤러리는 작가뿐만 아니라 기획자 역시 한 번쯤 전시, 기획해 보고 싶은 곳이라고 말이다.

고미술 거리의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을 갤러리는 외관을 최대한 살려 리노베이션(Renovation) 해놓았다. 따라서 을 갤러리는 주변 환경에 튀지 않아 자칫하면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니 을 갤러리가 주변 환경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놓았다고 말하는 것도 타당할 것 같다. 특히 을 갤러리 1층의 출입문 옆의 돌출한 외벽 전면이 유리창이라 갤러리 내부가 훤히 보인다. 고미술 거리 대로변에 위치한 갤러리 1층 전시공간은 작지만 세련되어 보였다. 특히 천장에 독특한 라이트를 설치해 놓았다. 이를테면 천장 전체가 라이트라고 말이다. 따라서 전시장 내부는 한낮처럼 밝아 별도의 조명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고 말이다.

 최상흠_무제 Untitled_2019

최상흠의 ‘인더스트리_페인팅(Industry_painting)’

 

독특한 전시공간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한 것인지 최상흠은 단 한 점의 작품만 설치해 놓았다. 최상흠의 <무제(untitled)>(2019)가 그것이다. 그의 <무제>는 마치 영롱한 검정 모노크롬 페인팅(black monochrome painting)처럼 보인다. 어떻게 제작된 블랙 페인팅이길래 영롱할까? 필자는 궁금한 나머지 작품으로 한 걸음 들어간다. 그것은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공업용 도료(塗料)로 제작된 30개의 조각들(pieces)을 벽면에 설치한 작품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멀티-레이어드 레진 몰탈 캐스팅(multi-layered resin mortar casting)으로 제작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무제>는 ‘틀(case)’이 있는 셈이다.

 최상흠_무제 Untitled_2019

 

 

최상흠은 가로 120mm와 세로 90mm 그리고 높이 25mm의 틀을 만들어 자신이 직접 제조하여 만든 ‘인더스트리_물감(Industry_paint)’을 부어 ‘조각’들을 만든다. 따라서 당신이 작품 <무제>를 측면에서 본다면 25mm의 두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인더스트리_물감’은 산업용 투명 레진 몰탈에 아크릴물감으로 조색한 다음 경화제를 혼합한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는 투명 레진 몰탈에 아크릴물감으로 조색할 때 매번 미소(微小)한 차이를 갖도록 한다. 따라서 벽면에 설치된 30개의 조각들은 동일한 컬러(color)가 아니라 아주 작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그의 <무제>는 ‘손맛’을 자랑하는 일명 ‘단색화’에 똥침을 놓는 ‘인더스트리_페인팅(Industry_painting)’이란 말인가?

 

최상흠의 일명 ‘인더스트리_페인팅’은 2009년에 시작한 <무제> 시리즈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그의 <무제> 시리즈는 캔버스 위에 에폭시 수지 페인트로 작업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멀티-레이어드 레진 몰탈 캐스팅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2015년이다. 2015년 그는 봉산문화회관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인더스트리_페인팅’을 처음 선보였다. 그리고 2016년 그는 이포 갤러리(yfo gallery)에서 마치 윤광이 나는 산업제품처럼 보이는 ‘인더스트리_페인팅’을 독특한 설치방식으로 선보였다.

 

 

 

 

 

 

 

 

 

 

 

 

 

 

 최상흠_봉산문화회관 개인전 풍경_2015                    최상흠_yfo gallery 개인전 풍경_2016

지나가면서 보았듯이 최상흠의 ‘인더스트리_페인팅’은 전통적인 ‘회화’와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흔히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손맛’이 없으며, ‘평면’으로 간주하기에 작품의 ‘피부’가 두텁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의 작품을 ‘인더스트리_페인팅’이라고 부른 것이다. 을 갤러리에 전시된 ‘인더스트리_페인팅’과 달리 초기 ‘인더스트리_페인팅’은 캔버스 위에 작업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직접 제조하여 만든 ‘인더스트리_물감’을 바닥에 뉘어놓은 캔버스 표면에 매우 조심스럽게 부어 만든다고 말이다.

 

그러나 최상흠의 ‘인더스트리_페인팅’은 한 번에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된 행위로 작업된 것이란 점이다. 필자는 그의 작품에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그의 작업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우선 바닥에 뉘어놓은 캔버스 표면에 물감을 부으면, 물감은 스스로 서서히 캔버스 가장자리로 퍼질 것이다. 그는 물감이 스스로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서 굳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는 물감이 굳고 나면 그 위에 다시 경화제를 혼합한 레진 몰탈에 또 다른 아크릴물감을 넣어 조색하여 만든 ‘인더스트리_물감’을 붓는다.

 

자, 그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그렇다! 물감 위에 조심스럽게 부어진 물감은 다시 스스로 퍼져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설 것이다. 물론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선 물감은 작업대 위로까지 번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작업대에는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 자연스럽게 번진 물감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캔버스에 물감 붓기를 그는 수십 번 반복한단다. 그는 물감 붓기와 기다림을 반복한다고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자신의 반복된 행위를 어느 순간 멈춘다. 머시라? 그가 어느 순간 멈추느냐고요?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수십 번 물감 붓기를 하는 과정에서 멈춰야 할 때를 선택한다. 그 순간은 논리적이 아닌 그때그때 중첩의 밀도를 보면서 결정한다.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삶은 매일의 반복된 지속이며 그 연속성은 규칙적 질서로 의미화가 가능하다. 규율, 규칙은 혼란스러운 실존을 개념화하는 작업이며 의미 없는 것을 생기 있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 미술에 이 프로세스를 설정한다.”

최상흠의 작업과정은 우리의 삶을 흉내낸다. 매일 반복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처럼 그는 반복된 행위를 통해 작품의 ‘삶’을 드러낸다. 여기서 말하는 ‘작품의 삶’은 캔버스 위에 차곡차곡 쌓인 물감들의 레이어(layer)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가 그의 작품 피부에서 보여지는 오묘한 컬러는 바로 물감의 층들로부터 우러나온 컬러인 셈이다. 그 컬러는 어느 물감회사에서도 만들 수 없는 컬러일뿐만 아니라 어느 팔레트에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컬러다.

 

필자는 지나가면서 을 갤러리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30개의 조각들이 동일한 컬러가 아닌 아주 작은 차이를 드러낸다고 중얼거렸다. 이 점은 그의 작품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는 반복임을 알려준다. 그렇다! 매일 미소하지만 변화하는 우리 모습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들 역시 반복을 통해 차이를 드러낸다. 그 점을 그는 ‘의미 없는 것을 생기 있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작업 프로세스를 의미 없는 반복행위로 설정하여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말이다.

 

최상흠_yfo gallery 개인전 풍경_2016

최상흠은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을 단지 작품 제작에 국한치 않는다. 그는 작품을 전시할 공간에 따라 연출을 달리한다. 필자는 2016년 이포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그의 일명 ‘인더스트리_페인팅’을 처음 보았다. 당시 그의 작품 연출은 독특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벽면에 설치하거나 비스듬히 벽면에 기대어 놓거나 전시장 바닥에 뉘어놓는 연출을 했었다. 따라서 그의 연출 방식은 그의 작업과정을 관객에게 암시해 준다.

 

​최상흠_세컨드애비뉴갤러리 전시 풍경_2018

필자가 지나가면서 말했듯이 최상흠의 작품은 물감들을 중첩시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피부(작품)’의 두께도 장난 아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100호 크기의 작품에 사용되는 레진 몰탈이 한 말 반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작품의 ‘몸무게’는 20kg 이상이 되는 셈이다. 지난 2018년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서 선보였던 영롱하게 빛나는 그의 120호 크기의 블루빛 작품이나 핑크빛 작품은 너무나도 가볍게 보이지만 ‘몸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상흠의 ‘인더스트리_페인팅’에서 빠트릴 수 없는 특징들 중의 하나가 컬러의 깊이감이다. 그의 작품은 반투명 물감으로 인해 묘한 깊이감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작품 피부에서 빛나는 컬러는 매혹적이다. 더욱이 층층이 쌓인 컬러들이 은은하게 피부 안쪽부터 우러나는 아름다운 윤광 피부로 나타난다. 그리고 작품의 가장자리는 마치 곡면으로 몰딩(molding)한 것처럼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완벽한 ‘몸’을 지닌다. 완벽한 ‘몸’에 홀딱 반하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흥미롭게도 그의 완벽한 ‘몸’은 인공적인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란 점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물감들이 스스로 그린/만든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필자는 최상흠의 작품을 물감이 스스로 그린/만든 일종의 ‘인더스트리_페인팅’이라고 작명했던 것이다. 그의 ‘인더스트리_페인팅’은 들뢰즈(Gilles Deleuze)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인간의 비인간적인 생성(devenir non humain de l'homme)’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작가가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논리적이 아닌 그때그때 중첩의 밀도를 보면서 손을 놓는다.

 

최상흠_굿스페이스 개인전 풍경_2018

최상흠의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작품’

2018년 최상흠은 대구 방천시장 부근에 위치한 굿 스페이스(GOOD SPACE)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당시 그는 전시장 센터에 단 한 작품만 설치해 놓았다.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작품이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것은 마치 벽돌처럼 보이는 백여 개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백여 개의 블록(block) ‘피부’는 영롱한 빛을 발해 눈이 멀 지경이었다. 필자는 그 영롱한 빛에 매혹된 나머지 차곡차곡 쌓여진 블록들로 한 걸음 들어가 보았다. 블록 하나의 크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멘트벽돌이나 적벽돌보다 약간 커 보였다.

 

그런데 당신의 최상흠의 ‘블록’들을 보면 특히 상단의 ‘피부’가 아닌 측면을 보면 물감이 흘러내린 사이 사이로 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그의 ‘블록’들은 나무로 제작한 ‘나무-블록’에 인더스트리-물감을 반복해 부어 제작한 것이다. 따라서 그 각각의 ‘블록’들 컬러는 언 듯 보면 같아 보이지만 세심히 보면 미소하게나마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나무-블록’들에 물감을 부어 만든 블록들을 마치 장난감 레고 놀이처럼 쌓아놓았다. 그런데 그가 행한 블록들의 쌓기구조는 기본적인 쌓기(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와도 다르다.

 

무슨 말이냐고요? 말하자면 그것은 기본적인 쌓기를 혼합한 조적법(영식쌓기와 화란식쌓기)이 아닌 마치 어느 현장으로 출고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단순 쌓기로 설치되었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한 블록들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다. 그것은 우선 약간의 간격을 두고 다섯 다발로 묶여져 있는데, 각 다발은 5단으로 쌓여져 있다. 5단 1다발은 총 160개의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어, 5단 5다발은 총 800개가 되는 셈이다. 와이? 왜 최상흠은 800개의 블록을 5단 5다발로 설치한 것일까?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800EA를 5로 나누면 1단이 160개, 1묶음이 160개입니다. 저의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한 것입니다. 800이란 숫자는 8을 뉘우면 무한대(∞)가 됩니다. 사정에 따라 앞으로도 같은 박스를 제작해서 다른 방식으로 설치를 해볼 생각입니다. 아이들 장난감 레고 블록처럼, 다른 공간에서도 설치 가능합니다.”

 

최상흠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아이-되기’로 작업한다. ‘현재의 아이-되기’로 작업한 그의 일명 ‘블록작품’은 전시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 가능하고 증식 가능하다. 문득 ‘예술은 유한한 작품을 통해 무한한 우주에 이르고자 하는 시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최상흠의 ‘블록작품’은 우리가 지나오면서 단편적이나마 보았던 그의 대표적인 <무제> 시리즈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의 답변이다.

“저의 평면작업이 (판넬을) 뉘어서 하는 작업이라 벽면에 걸기도 하고, 바닥에 뉘어서 보여준 과정에서 이번 박스 작업을 착안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나 명제 역시 따로 명명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최상흠은 시안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그 이후(Since then)>에 초대되었다. 당시 그는 신작 ‘인더스트리_페인팅’과 ‘블록작품’을 전시했다. 그런데 그의 ‘블록작품’은 작년 굿 스페이스에 전시했던 ‘블록작품’을 재구성해 놓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가 ‘블록작품’을 마치 아이들 장난감 레고 블록처럼 다른 공간에서도 설치 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굿 스페이스에 필자의 허벅지 높이까지 쌓았던 ‘블록’들을 필자의 키를 훨씬 넘는 구조물로 ‘변신’시켜 놓았다. 따라서 그의 ‘블록작품’은 전시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 가능하고 증식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상흠_시안미술관 <그 이후> 전시풍경_2019

2018년 최상흠은 대구 굿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후 서울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서 기획한 김승현 & 최상흠 2인전 <회사후소(繪事後素)>에 초대된다. 당시 그는 신작 ‘인더스트리_페인팅’과 ‘블록작품’과는 또 다른 ‘블록들’을 전시했다. 필자는 이곳에서 그의 새로운 블록작품만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다. 그것은 전시장 바닥에 40개의 블록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해 놓은 것이다.

 

​최상흠_세컨드애비뉴 <회사후소> 전시 풍경_2018

그런데 블록 하나의 크기는 굿 스페이스에서 보았던 ‘나무=블록’에 물감을 부어 만든 블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멘트벽돌이나 적벽돌보다 약간 커 보인다. 하지만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 전시된 블록들에는 굿 스페이스에서 볼 수 없었던 마치 산처럼 부분 돌출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블록은 다양한 물감들로 이루어진 얇은 조각들로 조합된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조각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다. 그렇다! 그 조각들이 다름아닌 그가 평면 작품을 하면서 생긴 조각들이다.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온다고요? 최상흠은 작업대에 뉘어진 캔버스 위에 물감을 붓는데, 물감은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 작업대 바닥으로까지 번지게 된다. 바로 그 작업대 바닥으로 번진 잔여 물감의 조각들이 바로 그의 블록 작품에 사용된 것이다. 그는 세로 25cm와 가로 35cm 그리고 높이 20cm의 블록 ‘틀’을 짜서 그 틀 안에 잔여 조각들을 세로로 빽빽하게 세워놓는다. 그리고 그 틀 안에 투명 레진 몰탈을 부어 블록 형태를 만든 것이다. 이제 감 잡으셨죠?

 

최상흠의 일명 ‘블록’은 두께와 폭을 지닌다. 그리고 그 직사각형의 입체 블록은 4방에서 각기 다른 컬러를 드러낸다. 더욱이 그의 ‘블록’ 작업은 40개의 ‘복수’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블록은 일종의 ‘몸(體)’이다. 그 ‘몸’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말하자면 ‘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미 없는 것을 생기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상흠은 보이지 않는 힘을 감각으로 생성한 것이 아닌가?

 

문득 들뢰즈의 ‘감각들의 블록(un bloc de sensations)’이 떠오른다. 들뢰즈는 예술작품을 지각체들(percepts)과 정감들(affects)의 창작물로 본다. 그런데 들뢰즈가 말하는 지각체들(percepts)은 지각들(perceptions)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각체들은 감상자들과 독립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말하는 정감들(affects)은 느낌들(sentiments)과 감정들(affections)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감들은 관객들의 느낌들과 감정들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각체들과 정감들은 전통적인 인식론의 객체/주체를 넘어선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인식론적 체험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최상흠의 작품에 나타나는 컬러는 ‘이름이 없는 컬러’이다. 왜냐하면 그 컬러는 투명하게 다양한 컬러들을 충첩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와 같은 영롱한 컬러를 처음 보았다. 따라서 그것은 마치 이름 없는 ‘잡초(雜草)’처럼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그는 이름 있는 화초를 애초부터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는 ‘관상용’ 화초의 작품이 되기보다 차라리 아직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잡초’의 작품이기를 원한다고 말이다.

 

그런 까닭일까? 최상흠은 그의 작품들을 한결같이 ‘무제(Untitled)’로 표기했다. 이름 없는 이름? 그림 없는 그림? 그러면 그의 작품은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따라서 아직 이름이 없는 일종의 ‘잡화(雜畵)’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의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작품은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을 깨달은 뒤에 할 수 있다(繪事後素)’는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탄생한 것이 아닌가?

 

 

최상흠의 ‘블랙 드로잉(black drawing)’

흥미롭게도 을 갤러리는 입구 반대편 벽면에도 (도로변에 돌출한 전면 유리창과 마찬가지로) 유리창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그 유리창은 건물 뒤편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 출입문을 향해 보면 건물 뒤편에 또 다른 건물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을 갤러리의 전시공간은 두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 건물과 뒤 건물 사이에 중정(中庭) 같은 아담한 마당공간도 있다. 뒤 건물은 앞 건물과 마찬가지로 3층 건물 높이로 신축된 건물이다.

 

그런데 앞 건물이 3층으로 구분되어 있는 반면, 뒤 건물은 단층 건물이다. 을 갤러리의 김을수 대표의 말에 의하면 을 갤러리는 기존의 한옥 두 채를 새롭게 건축한 갤러리이다. 김 대표는 김태경 건축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설계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고미술 거리 대로변에 위치한 한 채를 전시장(1층)과 사무실(2층과 3층)로 리노베이션 하고, 또 다른 한 채는 아예 허물고 독립 전시공간으로 신축했던 것이다.

 

독립 전시공간은 직사각형으로 긴 변멱의 길이는 10여 미터에 달하는 반면 폭은 그에 비해 반 정도인 5미터 가량 되어 보인다. 천고는 긴 벽면의 길이와 마찬가지로 무려 10여 미터에 달한다. 흥미롭게도 독립 전시공간의 천장은 비스듬하게 건축되었다. 그리고 그 천장은 앞 건물의 전시장 천장과 마찬가지로 (유리창들만 제외하고) 라이트로 만들어져 있었다. 따라서 전시장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 별도의 조명이 필요치 않아 보였다. 또한 바닥은 목재로 마감하여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이 천고가 높은 단일 전시공간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기획자에게도 한 번 연출해 보고 싶은 충동을 갖게 한다.

 

반면에 전시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란 점에서 그 전시공간에 작품을 생기있게 연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작품이 공간에 먹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연출의 대가 최상흠이 그 전시공간에 작품을 어떻게 연출해 놓았을지 자못 궁금했다. 그는 그 거대한 독립 전시공간에 딱 2점의 작품만 전시해 놓았다. 하나는 10여 미터에 달하는 전시장 벽면에 1000여 개가 넘는 조각들로 빼꼭하게 설치한 대작인 <무제(untitled)>(2019)이고, 다른 하나는 대작 맞은 편 벽면에 설치한 3점의 드로잉 연작 <무제(untitled)>(2019)이다.

 

​최상흠_무제 Untitled_2019

우선 드로잉 연작부터 보도록 하자. 그의 드로잉은 언 듯 보기에 목탄으로 화면을 가득 칠한 ‘블랙 드로잉(black drawing)’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신이 작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면 그 블랙 드로잉에서 선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선들은 그어진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엇인가 뾰족한 것으로 파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검정 화면은 어떻게 작업된 것인지 ‘지문’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최상흠에게 작업과정에 대해 질문했다. 그의 답변이다.

 

“제가 바탕으로 사용한 종이는 프랑스의 아르쉬(ARCHES) 판화용지입니다. 이 판화지는 부드럽고 두꺼운 중성지입니다. 저는 그 종이 표면에 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직선으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난 종이 위에 흑연 가루를 뿌리고 손바닥으로 문질렀습니다. 저는 그 행위를 수십 차례 반복하여 정착시켜 작업을 완료한 것이죠. 제가 재료(질료)들을 선택하고 다룰 때 고려하는 것은 본연의 성질을 관찰하고 가능한 물질 간의 ‘궁합’과 그대로의 성질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종이에 칼로 상처를 냈다는 선들을 보면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그는 칼로 종이에 격자무늬를 만들어 놓았다고 말이다. 아니다! 그가 칼질로 만들어 놓은 것은 가로줄과 세로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무늬가 아니라 가로줄보다 세로줄이 긴 직사각형들의 무늬들이다. 그런데 그 직사각형은 굿 스페이스나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 전시되었던 직사각형의 ‘블록’보다는 크기가 조금 작다. 도대체 그 크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 직사각형의 크기는 그의 블랙 드로잉 맞은편 벽면을 가득 채운 조각들의 크기와 닮아 보인다. 최상흠의 답변이다.

 

“3점의 ‘블랙 드로잉’은 벽면의 가변설치작업을 드로잉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입니다. 왜냐하면 벽면에 설치한 캐스팅 작업 사이즈와 선묘가 교차해서 생기는 사각의 사이즈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최상흠_무제 Untitled_2019

 

최상흠의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그리운 아버지에게 헌사(獻詞)하는 작품

자, 그러면 이제 최상흠의 대작 <무제>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10여 미터에 달하는 전시장 벽면에 1000여 개가 넘는 조각들로 빼꼭하게 설치한 문자 그대로 ‘대작(大作)’이다. 필자는 그의 ‘대작’ 앞에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의 작품은 더욱이 천장의 대낮 같은 라이트로 인해 영롱하게 빛난다. 따라서 필자는 마치 환상의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착각할 정도이다. 찬란한 광채에 눈이 먼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작품으로 한 걸음 다가간다.

 

​최상흠_무제 Untitled 부분_2019

1000여 개가 넘는 조각들은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녹색 계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각각의 조각은 하나도 동일 색은 아니다. 그들의 컬러는 매우 작지만 차이를 갖는다. 이 점은 작가가 1000여 개가 넘는 조각들을 제작할 때 각기 다른 비율로 색들을 조합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그의 <무제>는 세심한 고려와 적잖은 노동의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그의 조각은 마치 바닥 없는 심연처럼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최상흠_무제 Untitled 부분_2019

전시장 벽면 가득 채운 조각의 숫자는 1105개이다. 우선 조각의 크기를 보자. 그것은 가로 90mm와 세로 120mm 그리고 깊이 25mm이다. 따라서 그 조각은 굿 스페이스와 세컨드 에비뉴 갤러리에 전시된 ‘블록’들보다 크기도 작고 두께도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언 듯 보기에 예전에 집집마다 문에 내걸은 문패(門牌) 크기와 같아 보인다. 더욱이 조각의 두께를 보면 문패와 닮았다. 당 필자, 궁금한 나머지 작가에게 조각의 크기에 대해 물었다. 그는 ‘문패’ 크기를 참조해 제작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했다.

 

“제가 유년기 시절 거주하던 대구 삼덕동 동내에는 집집마다 문패들이 붙어있었습니다. 저는 문패의 이름을 읽고 다닌 버릇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려운 한문은 읽을 수 없었지만요. 하지만 그 습관은 그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문패의 크기도 조금씩 달라져 갔고, 재료도 나무나 옻칠 석재에서 이후 플라스틱으로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청소년기, 학교를 마치고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어두운 옻칠 바탕에 자개로 희미하게 반짝이던 이름 석자가 말이죠.”

당 필자, 최상흠의 ‘이름 없는 문패’들을 보면서 문득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의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 떠올랐다.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최상흠은 오래전 노자의 ‘명가명비상명’ 앞에 쓰여진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에 관한 작품을 제작했었다. 1994년 작업된 그의 <도가도비상도> 시리즈가 그것이다. 물론 그의 <도가도비상도>는 노자 도덕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아닌 ‘도가도비상도(刀枷刀匕葙刀)’였다.

​최상흠_도가도비상도_1994

 

그것은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를 발음만 같은 다른 한자로 변환시킨 일종의 ‘언어놀이’ 작품이다. 이를테면 그는 노자의 ‘도(道)’를 ‘칼(刀)’로 변환시켰다고 말이다. 당시 최상흠은 동음이의어로 변환하는 작품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와이? 왜 최상흠은 한자의 음만 따라 의미를 변환시킨 것일까? 혹 그는 모든 ‘이미지(signifiant)’가 하나의 절대적인 의미로 포착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도가도비상도(刀枷刀匕葙刀)> 역시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같은 의미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 둘은 현묘(玄妙)하다고 할 수 있잖은가?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요? 조타! 그 엉뚱한 말을 언급하기 위해서라도 노자의 도덕경으로 되돌아가도록 하겠다. 흥미롭게도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다음 구절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던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다.

 

말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문득 최상흠이 그의 작품들 이름(제목)을 한결같이 ‘무제(Untitled)’로 표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무제, 즉 ‘이름 없는 이름’ 말이다. 그렇다면 ‘이름 없는 이름’과 ‘이름 없는 문패’는 어떤 관계라도 있단 말인가?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필자는 노자의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름 없음은 천지의 처음이요, 이름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늘 없음에서 그 오묘함을 보려 하고, 늘 있음에서 그 갈래를 보려고 해야 한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달리할 뿐이니, 이를 일러 현묘하다고 하는 것이다.(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 此兩者同出 而異名 同謂之玄)”

 

필자는 지나가면서 최상흠의 <도가도비상도(刀枷刀匕葙刀)>를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같은 의미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둘을 현묘하다고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이름만 달리할 뿐이니, 이를 일러 현묘하다’는 노자의 구절과 문맥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제 감 잡으셨죠?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이름 없는 문패’ 말이다. 광무 연간(1897∼1906) 우편 제도가 발달하고 편지 등의 왕래가 많아지자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했단다. 대문에 설치된 문패는 직육면체 모양의 나무나 돌 그리고 대리석에 이름과 주소를 새겼다. 물론 오늘날 문패의 이름은 숫자로 변환되었다. 따라서 최상흠의 ‘이름 없는 문패’는 ‘이름 있는 문패’ 이후에 등장한 것이다. 이름이 있었던 문패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이름을 잃게 된 셈이다.

 

혹자는 ‘이름 없는 문패’를 보면서 ‘무명인(無名人)’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것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은유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것은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을 기리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이름 없는 이름’은 무명(無名)과 유명(有名)이라는 이중의 뜻을 내포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무명’은 단순히 이름이 없음을 뜻하는 것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명’은 이름은 있으니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름 없는 이름’은 마치 ‘이름 없는 문패’처럼 유명과 무명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내포한 무명이 되는 셈이다.

 

필자는 지나가면서 최상흠의 문패를 마치 바닥 없는 심연처럼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고 중얼거렸다. 노자는 ‘이름 없음은 천지의 처음’이라면서 우리에게 ‘늘 없음에서 그 오묘함을 보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묘(妙)’는 원래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매우 작은 무늬를 가리켰다고 한다. 따라서 ‘묘’에는 ‘매우 작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제 감 잡으셨죠? 왜 최상흠의 ‘이름 없는 문패’가 오묘하게 느껴지는지 말이다.

이번에는 1105개의 ‘이름 없는 문패들’에 대해 살펴보자. 최상흠의 ‘이름 없는 문패들’은 한결같이 모두 마치 집집마다의 문패들에 적힌 이름들처럼 미소하지만 컬러가 다르다. 이를테면 이름은 없지만 (이름이 차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각기 다른 ‘이미지’로 나타난다고 말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의 ‘이름 없는 문패들’을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이름이 없는 일종의 ‘잡화’로 불렀다. 그런데 이름 없는 문패와 아직 개념화되지 않는 작품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그의 <무제>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최상흠은 작품을 일종의 ‘가공의 건축물’과 같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가설 건축물처럼 완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세계와 시간 속에서, 또한 변화하는 사고를 가진 개체’로 그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와 사물을 미결정 지속의 어떤 관점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본다’ 정도의 말로 표현한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이렇게 본다’ 정도의 말로 표현했다.

 

물론 최상흠의 ‘이렇게 본다’와 필자의 ‘이렇게 본다’는 말은 같지만 느낌마저 같다고 확신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작품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겠지만, 우리의 느낌들이 공유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최상흠의 작품세계 언저리만 맴돌던 필자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그의 작품세계에 한 발을 들어놓았다는 점이다. 필자는 어두운 바탕에 인더스트리-물감으로 반짝이는 ‘이름 없는 문패’의 황홀한 ‘문’으로 들어선다.

 

*사족 : 최상흠의 대작 <무제>는 그만의 섬세함과 절제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하나의 작품에 담았다. 그의 아버지(1921년생)는 강제징용과 팔공산전투 참여 그리고 휴전 후 지리산토벌대 차출 등 한 개인으로 현대사의 굴곡을 몸으로 감당하신 분이셨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을 시기인 1982년에 작고하셨다. 그는 청소년 시절 최상흠으로 돌아가 학교를 마치고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는 동안 어둠 속에서 어두운 옻칠 바탕에 자개로 희미하게 반짝이던 문패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바라보았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이름 없는 문패’ 작업을 했다. 그는 자신을 그의 아버지에 비교해서 “포시랍다(경상도 방언) 생각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의 대작 <무제>는 그리운 아버지에게 헌사(獻詞)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득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 마지막 두 문장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어떤 행동보다도 훨씬 더 숭고한 일이다. 이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그 어떤 안식보다도 평안한 안식을 향해 갈 것이다.”

는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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