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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블루아워: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2019. 5. 7-6. 8

‘블루 아워: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I’heure bleue:I’heure entre chien et loup’은 빛과 어둠이 뒤섞여 바뀌는 완전히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하루 두 번 해 뜰 녘과 해 질 녘의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프랑스어다.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또는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정확히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을 뜻한다.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블루’ 컬러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색이었다. 과거에는 고귀하고 신성한 색으로 여겨져 성모 마리아의 의상을 파란색으로 채색했으며, 괴테는 ‘색채론’에서 파란색을 두고 자극과 진정의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이 있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색이라고 말했다. 이브 클레인의 IBK 블루는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로 순수한 빛과 공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희망과 신뢰, 절망, 우울 등 긍정과 부정 정반대의 이미지를 모두 아우르는 신비한 컬러 블루는 분명 많은 작가들에게 이야기를 보다 풍성하게 담아낼 수 있는 매력적인 컬러다. 화가 정병국에게 있어 블루는 그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색이다.

 

천장이 높기로 소문난 을갤러리 전시장의 네 벽면을 각각 채우고 있는 네 명의 인물들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2m가 훌쩍 넘는 커다란 덩치의 이들은 단서가 모두 삭제된 푸른 배경 속에서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또는 그조차 알 수조차 없도록 아예 등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을 반겨주기보다는 무언가 깊이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또 무언가 잃어버려 아쉬운 사람처럼 화면 너머의 어딘가를 쫓고 있다. 저마다 자신만의 시간에 빠진 거인들이 나를 외면하고 소외시키며 만들어내는 숨이 막힐 듯한 압도는 그들에게 말을 걸기도 아는 체를 하기도 힘들게 만들어 전시장에 적막한 침묵을 만든다. 아무런 말이 없는 정병국의 거인들은 분명 작가가 오랫동안 세상을 향해 수없이 질문했던 불완전한 인간 본연에 대한 물음의 과정과 작가의 답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르니 우리는 깊은 사색에 빠진 거인들의 어깨를 두드려야만 한다.

 

정병국의 화면은 위치도, 시간도 알 수 없는 푸른색의 공간 속에 인물 혹은 사물이 배치되어 있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만의 특별한 회화적 기교를 부렸다던가 세상에 없던 방법으로 재료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왠지 익숙한 풍경과 낯익은 인물을 그린 듯한 그의 그림이 낯설지만 알 수 없는 오묘한 집중력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화면 속에 슬며시 놓인 독특한 시간 때문이다. 푸른 배경이 만들고 있는 오묘한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거인들에게는 마치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인위적인 조명이 쏘아지고 있다. 하지만 인물이 만드는 그림자는 그에게 쏘아진 빛과 비례하는 그것이 아니다. 그의 회화 속에는 하나의 시간이 아닌 다양한 시간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병국은 일상 속에서 경험했던 일들을 빈 화면 앞에서 되새김질해 머릿속에서 언젠가, 어디에선가 마주쳐 지나온 누군가와 사물 또는 배경에 대한 기억을 각각 끄집어내어 재조합해 그림을 그린다. 때문에 그의 그림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해 현실과 비현실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일종의 초현실적인 회화다. 그의 그림에는 새벽인지 아침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의 경계가, 작가가 경험했던 실제와 그의 눈을 통해 저장된 여러 기억 간의 간격이 한데 뒤섞여 있다. 또 이미 언젠가의 과거를 품고 있는 그림과 그것을 전시장에서 맞닥뜨려 마주하고 있는 지금 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재조합될 지금의 순간에 대한 내일의 기억이 모두 한데 머무르고 있다. 작가의 그림은 여러 존재와 그들의 시간이 뒤섞여 있는 까닭에 온전히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경계에 머물고 있다.

 

이미 지나쳐버려 ‘허상’으로 남은 기억을 다시 화면으로 끌어와 조합하는 과정은 작가에게 어쩌면 그가 마주해왔던 눈 밖의 모든 것들의 충족되지 못한 ‘진상’의 이야기를 쫓는 안타까운 노력일 것이다. 누구나 해봤음직한 불확실한 존재와 그가 처한 현실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화가 정병국은 화가에게 주어진 몫으로써 실천하고 있다. 그가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자신의 불완전한 내면적 정서들을 창조적 동기로 삼아 화가로서 붓으로, 물감으로 커다란 화면에 펼쳐내어 맞서 극복해내어 오히려 더욱 강한 박동을 일으키고 있다. 불완전하고 부족한 상태의 인간을 그려낸 그의 회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존재성과 그 생명력을 역설하고 있다.

 

정병국의 푸른 거인들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생명이 아니라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내적으로 타오르며 살아있는 뜨거운 에너지와 그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 어린 긍정을 가득 품고 있다. 이들은 작가가 개인지 늑대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실루엣을 향해 던진 수 백 번의 물음표 가득한 깊은 사색 속에서 느낌표가 되는 찰나의 순간을 분명 함께 했을 것이다. 굳게 입을 다문 그들 앞에서 작가의 물음표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관객들이 전시장에서 정병국의 회화와 더불어 경험하는 오묘한 사색과 탐구의 시간이 바로 개와 늑대 사이의 블루 아워일 것이다. 관객들이 새롭게 만들어내는 물음표를 보며 푸른 거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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