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Secretly, Greatly
2018. 01. 26 – 03. 17
2018년 1월 26일 개관하는 을갤러리(대표 김을수)는 오는 26일부터 3월 17일까지 개관 첫 전시인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에로티시즘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인간의 불완전함을 예술로 승화하는 이근민 작가의 누드 드로잉 또 최근 새롭게 가치 평가되고 있는 일본 우키요에 작가들의 춘화를 포함한 총 15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시대를 풍미하는 하나의 거대 기조와 도덕적 속박에 구애되지 않는 거침없는 상상력을 갖고서 우리 세계의 특수한 장면을 포착해 내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작가들이다. 을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자신의 화면에 풀어낸 인간의 은밀한 욕구와 그 너머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고자 한다.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와 이소다 코류사이(礒田 湖龍斎) 등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들의 춘화는 그동안 외설적인 그림이라 일컬어지며 오랜 시간 동안 점잖은 미술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여러 재야 학자들과 수집가들에 의해 꾸준히 보존되고 연구되며 최근 그 조형적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당시 지배 계층의 높은 수요로 인해 판매 가격이 매우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도 우키요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 우키요에 작품 중 가장 탁월한 기술 수준이 적용되어 뛰어난 색채와 구도, 사실성과 상상력 등 모든 조형적인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속 내용을 살펴보면 유명 인물에 대한 이야기나 고전을 야릇한 내용으로 각색해 성적인 장면을 묘사한 삽화를 곁들인 것들이 많으며, 작품 곳곳에 하이쿠와 마네에몬(콩알 사내)이 등장하며 일본 문화 특유의 재미를 더해 적나라하다기 보다는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해학적 요소가 있다. 최근 일본 에이세이 분코 박물관, 독일 부흐하임 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춘화 전시를 선보이며 단순히 포르노 작품으로 치부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춘화만이 가지고 있는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 방식과 그 속에 담긴 당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난 풍속화로서의 가치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클림트의 스케치 다섯 점 또한 농염한 여성의 누드를 담아내고 있다.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화가인 클림트의 현재 위상과는 달리,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정부와 대중들로부터 노골적인 변태적 취향의 화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작가가 열네 명의 사생아를 두고 있으며, 그의 작업실엔 언제나 두 세 명의 모델들이 벌고 벗고 있어 방문객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지며 클림트와 에로티시즘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붙어 다녔다. 평생 수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는 정작 진정으로 사랑하는 에밀리 플뢰게에는 키스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한 사랑을 했다고 한다. 꽃을 살 돈이 없을 때 종이에 꽃잎의 수만큼 하트를 그려 넣은 뒤 ‘꽃이 없어 이것으로 대신합니다’고 적어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에로티시즘의 대가라 불리는 클림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에로틱한 신체와 제스처는 그에게 여성은 쾌락의 대상이라기보다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모든 순간을 성실하게 사랑하며 그것들을 화면 속에 풀어내 작가에게 있어 그만의 에로티시즘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암울한 시대를 탈출하는 하나의 희망은 아니었을까.
최근 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젊은 작가인 이근민은 작가가 오랫동안 앓았던 해리성 장애와 병중에 겪었던 환각과 환청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주로 해체, 먹기, 포스트모던 원숭이, 악몽, 차 멀미와 같이 작가가 경험한 일련의 고통들을 반구상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살구색과 붉은색의 날 것과도 같은 일그러진 형체는 마치 왜곡된 신체 내부 장기를 들여다보는 기괴한 느낌을 준다. 변형되고 훼손된 듯한 신체와 그에서 파생되거나 아무렇게 뭉쳐진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는 그만의 독특한 색감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뜨거운 생기를 내뿜는다. 이근민의 작업 속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인간은 현실 속에서 어떠한 병적 증상 혹은 중후라는 병명적 데이터로 분류되어 취급되는 나약한 자신을 재형상한 것이며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메타포이다. 그에게 있어 예술 작업 과정은 현실과 비현실, 병듦과 건강 그리고 유무를 나누는 어떠한 이기적인 인간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자 위로이며 동시에 예술적 승화 과정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는 ‘위반 없는 곳에 쾌락은 없다’고 했다. 인간에게 터부시 되고 금기 되는 것을 위반하는 것만큼 짜릿한 쾌락이 있을까? 을갤러리가 마련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익숙하고 친숙했던 예술이 아니라 민망하고 낯설 것이다. 혹자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고 불편한 작품들이 예술사에서 또 우리 역사 속에서 은밀하게 지속되어 온 사실에 주목하며,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불편함을 굳이 꺼내 들어 그 너머에 깃들어있는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위대한 예술적 표현들이 우리 문화의 지속적인 발전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대해보며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의 야릇한 본능적 욕구를 표현한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예술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전시장을 나서는 관람객들이 수백 년 전의 어느 늦은 밤, 누군가가 베갯머리에 숨겨둔 춘화첩을 슬며시 꺼내보며 느꼈을 그 은밀하고도 위대한 성의 미학과 묘한 환희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지인